테리 스미스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Who is to blame for the latest pensions debacle?"을 번역한 글입니다. 최근 영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한 연기금 위기의 본질을 간명하게 분석했습니다.
테리 스미스는 "거시 경제에 관한 예측이 펀드스미스의 투자 철학과 전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뛰어난 통찰에 기반해 경제와 시장을 분석하는 글을 정기적으로 쓴다"라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투자자입니다(조만간 출간될 테리 스미스 번역서에서 〈감수의 말〉에 작성한 내용입니다).
최근의 연기금 파산 위기, 누구 책임인가?
테리 스미스
《파이낸셜 타임스》, 2022년 10월 6일
번역: generalfox(파란색 글씨: 역자 주)
여러분 모두 길트채(gilt, 영국 장기 국채) 시장이 영국 연기금의 부채 연계 투자(LDI: liability driven investment, 현금과 국채 등 안전자산 투자에 주식 등 수익 추구형 포트폴리오를 결합한 자산배분 전략) 전략에 미친 영향에 관해 들어봤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혼란은 왜 일어났고, 누구 책임인가?
과거 내가 은행에서 일하던 시절, 계리사가 회사의 연기금에 관해 검토하는 (지루한) 회의 자리에 끝까지 남아있었던 적이 있다. 계리사는 연금 가입자의 수명과 인플레이션, 장기 자산수익률(ROA)에 관해 방대한 예측을 한 뒤, 미래 연금채무 대비 연기금 자산의 이익(혹은 손실) 추정치를 내놨다.
그때 내가 가졌던 의문은 이랬다. 그냥 현재 주가와 채권 가격을 보면 되는 문제 같은데, 왜 저 계리사는 미래 수익에 관한 복잡한 추정치를 제시할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 나는 멍청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똑똑했음을 깨닫는 중년이 된 젊은이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때 그 계리사가 연기금을 장기 투자 수단으로 보는 제대로 된 관점을 지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회계업계 종사자들은 이후에 계리적 밸류에이션에만 의존하는 대신 회사 연기금이 보유한 자산의 '공정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곧 회사의 연간 재무제표에 추정 이익(혹은 손실)을 보고하는 방식이다.
매년 회사의 자산 가치를 시가 평가하는 것보다 더 보수적인 방법이 존재하겠는가? 사실 정확히 말하면, 해당 자산을 보유하는 목적에 따라 그 질문의 답이 달라진다. 연기금은 장기간에 걸친(보통 수십 년에 이르는) 연금 지급의 자금 조달 목적으로 자산을 보유한다.
자산과 연금채무의 연 단위 시가 평가를 공시하는 것은 단기 가격 변동성을 고려하게 하고 형편없는 의사결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기업과 연기금 수탁자는 이 단기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데 혈안이 됐다. 바로 그 맥락에서 연기금에 자문하는 투자 컨설턴트가 LDI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LDI는 미래에 지급할 의무가 있는 연금의 지급 시기에 맞춰 채권이나 길트채를 산다는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다. 이러한 접근법은 문제가 있다. 장기간에 걸쳐 길트채보다 더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자산, 예컨대 주식에 투자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위 질문에 관한 답은 주식이 창출하는 더 높은, 하지만 불확실한 투자 수익과 국채가 제공하는 확실한 만기 수익을 맞바꾸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연 단위 시가 평가의 변동성을 피하려는 열망에도 좌우된다. 최근 채권 시장의 상황에서 목격한 바처럼 금리가 상승하면 주가는 극도로 힘든 변동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채권은 그래도 연금을 지급할 미래에 만기가액을 돌려받을 수 있기라도 하다.
컨설턴트에게 자문 받은 연기금은 특히 적자 상태에 있을 경우(대다수가 그랬다) 연금채무의 지급 시기를 맞추려고 레버리지를 사용하면서 위 실수를 더 심각한 지경으로 몰고 갔다.
추정 연금채무 규모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자산을 보유한, 가령 자산은 64파운드, 부채는 100파운드인 은행 연기금을 가정해 보자. 이 펀드는 연금채무의 지급 시기를 맞추기 위해 길트채를 살 수 있는 자금이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자산과의 차액인) 36파운드만큼의 길트채를 사는 데 자산 64파운드를 담보로 제공하는 레버리지를 사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이는 레버리지가 아니라 '파생상품 계약'으로 불렸지만, 효과는 똑같다.
파생상품의 도입이야말로 회계 부정과 그릇된 투자 전략이 혼합되어 폭발한 현 사태의 기폭장치였다. 지난주에 길트채 가격이 하락하자 연기금은 이 파생상품 계약에 대한 마진 콜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해결 방법은 보유한 길트채 중 일부를 매도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길트채 가격은 더 하락했고, 더 많은 마진 콜이 일어났다.
독자는 나 역시 일이 벌어진 후에야 문제를 알아채는, 흔하디흔한 평론가 중 한 명에 불과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2003년 콜린스 스튜어트의 CEO로 재직 중이던 나는 당시 털릿 리버티(현재 TP-ICAP)라는 인터딜러 브로커(개인이 아닌 브로커 딜러, 딜러 은행 및 기타 금융기관 간의 거래를 쉽게 해주는 전문 금융 중개자) 회사를 인수했다. 인수 결과로 적자를 기록하던 연기금도 따라왔는데, 추정 연금채무 100파운드당 자산 64파운드를 보유한 위 예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나 역시 연금채무 지급 시기에 맞춰 채권을 매수해야 한다는 투자자문사의 사이렌 소리에 둘러싸였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털릿의 연기금 수탁자는 투자자문사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고퀄리티 기업 20개에만 투자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그 자문사는 이를 두고 "내가 지금까지 본 연기금의 투자 전략 중에서 가장 위험하다"라고 평했다. 당시 의장은 아주 인상적인 말로 거기에 반박했다. "당신네가 제안하는 전략과는 다르게, (고퀄리티 기업에 투자하려는) 우리 전략은 실제로 돈을 벌 '위험'이 있다."
10년 뒤 내가 털릿을 떠날 시점에 연기금은 추정 연금채무 100파운드당 132파운드의 자산을 보유하게 됐다. 이는 단순히 운이 좋은 타이밍의 결과로만 볼 수는 없다. 주가가 폭락했던 2008~2009년 금융 위기 당시 수탁자는 아주 올바른 방식으로 대처했다. 바로, 무시하는 것이다.
털릿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인가? 당신이 장기 투자자인데(모든 연기금은 그래야만 한다) 포트폴리오에서 가격 변동성을 없애려고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잘못된 위험에 초점을 맞추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연기금은 장기간에 걸쳐 가장 높은 투자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되는 자산, 즉 주식에 투자하는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 연간 손실은 일종의 우발 채무(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으나 현재 실현되지는 않은 불확실한 채무)로 간주하고, 수탁자는 털릿 프리본의 수탁자처럼 투자 컨설턴트를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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