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오너 펀드 투자자 서한》의 대망의 피날레를 장식할 글입니다. 물론 2023년 반기 서한부터 시작해 새로운 회차가 올라오면 또 번역하겠지만요.
음모론은 매력적입니다. 저도 어릴 때 《그림자 정부》 시리즈를 읽고 나서 '토끼 굴'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고백건대, 남들은 보지 못하는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이론을 수립하는 데서 지적 우월성을 맛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 경험에 따르면 음모론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의미 없어 보였거든요.
투자자들도 마찬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거대 세력과 그들 간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치밀한 전략 아래 돈을 빨아들일 '음모'가 진행 중이라면 개인 투자자가 과연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이 글을 꼭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투자자의 음모론과의 조우
로버트 비널
2021년 1월 16일
번역: generalfox(파란색 글씨: 역자 주)
제가 정말 오랫동안 쓰고 싶었던 이 글을 이제서야 쓰는 이유는 투자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기는 해도 그것이 주된 주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오래전 음모론을 마주한 이후 저를 계속해서 괴롭혔던 질문을 다룹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 투자자 서한을 더 상세히 설명할 목적으로 팟캐스트를 개설한 (겨우 몇 분밖에 걸리지 않은) 행위가 좁은 의미의 투자를 벗어난 주제를 다룰 즐거운 자유를 제게 선사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고 인터넷에 능숙하며 분석적인 사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산재한 '점들을 연결할connect the dots' 시간이 충분한 사람이 겪는 정신 질환이 두렵기에 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들은 우리 투자자 서한을 읽는 사람과 똑같은 인구통계학적 특성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드문 일이죠). 저는 이 글에서 의도적으로나 무심코 다룰 현상에 의학적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인기 있는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기 공간에 드나드는 멤버 사이에서 희소한 암 발병률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연락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아래에 다룰 일화를 돌아보려 합니다. 클럽 운영자는 상관관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어쩌면 상관관계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멤버에게 알리고 그들 스스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겠죠.
음모론과의 조우
The Encounter
먼저 다룰 일화는 6년 전 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던, 어떤 면에서 아주 이례적이었던 어느 일요일 오후의 이야기입니다. 한겨울이었기에 제 가족은 저녁 식사까지 몇 시간 남지 않은 햇살 아래 시간을 보낼 좋은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죠. 하지만 곧 제가 모르는 번호로 취리히에서 전화가 걸려 오면서 계획은 틀어졌습니다.
"안녕, 로버트. 나 잭이야." 오랜 대학 친구였습니다(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 글에는 가명을 썼습니다). "공중전화라서 오래 통화할 수는 없어. 나 지금 취리히에 있는데, 혹시 너희 집에 가서 잠깐 만날 수 있을까?"
전화 건 사람이 잭이라서 아주 반가웠습니다. 대학에서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졸업 후 몇 년간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거든요. 공중전화에서 전화했다는 사실이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었거나 스위스의 끔찍할 정도로 비싼 로밍 요금을 내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고는 그냥 넘겼습니다.
제 예상보다 빨리 초인종이 울렸고, 이내 잭이 주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제 기억 속 모습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은 그는 저를 보자마자 아주 반가워했습니다(저도 그랬고요). 그는 그동안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했고, 한 30분 동안은 제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취리히로 이사한 소식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편안하고 재밌는 대화였기에 마치 15년 전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마치고 잭에게 안부를 물었는데, 순간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내가 왜 공중전화에서 전화했는지 궁금하겠지." 그가 말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엄청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화날 일을 저질러 버려서, 그들이 나를 잡으려 하고 있어."
잭의 말을 듣고 저는 정말 당황했습니다. 분위기가 갑작스레 바뀌었고, 그가 정말 심각한 곤경에 처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물었습니다.
그는 영국 증권가의 유명 회사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딩 일을 하다가 최근에 해고당했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해고당한 이유는 몰랐지만, 직전에 여성 비서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고 했습니다. 잭은 영국 정부에서 일하는 중견 공무원인 그녀의 남편이 자기 아내에 대한 대우에 격분해 복수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고 했습니다. 그 남편이 막강한 인맥을 동원해 잭을 해고했을 뿐 아니라 테러리스트 용의자에 잭의 이름을 올리기까지 했다더군요.
그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받은 느낌이 당황 정도였다면, 이제는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제 친구에 닥친 불행에 정말 화가 났습니다. 예전에 잠깐 영국 증권가에서 일하며 대형 은행이 얼마나 정치적인지, 그들의 눈 밖에 난 직원이 얼마나 큰 보복을 당하는지 경험했죠. 그에게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행히 트레이더로 일하며 돈을 많이 벌었고 해고당하면서 퇴직금도 두둑이 받았기에 재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집 옆에 있는 저택을 샀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돈 문제는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가설을 입증할 증거를 찾느라 그날 하루를 다 쓴 그는 여러 건의 문서뿐 아니라 자기가 테러리스트 용의자가 되었음을 확인해 줄 증인도 찾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살짝 넋이 나간 상태로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며 이 모든 내용이 진짜라고 믿냐고 물었습니다.
"나도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깨달은 그는 영국 사회의 최고위층 인사에게 자기 일을 알리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영국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에게 도움을 구했다고 하더군요.
잭은 영국 총리에게 서신을 발송했다고 했습니다. "당신 부하 직원들을 해고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저를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잭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지만,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부 중견 공무원이 사소한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무고한 희생양을 테러리스트 용의자 명단에 올린 후 24시간 감시한다는, 정부 최고위층까지 관여한 음모를 의도치 않게 알게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직접 겪은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습니다.
"로버트, 내가 아는 것은 영국 정부 전체를 무너뜨릴 만한 파급력이 있어. 나를 계속 괴롭힌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사실을 폭로하려 해." 그가 에이스 카드를 전부 손에 쥔 사람의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제가 듣고 있던 이야기의 규모와 범위가 머릿속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려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내가 캐머런 총리에게 서신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이웃이나 심지어 아예 모르는 사람도 나를 찾아와서는 경찰이 나에 관해 캐묻고 다닌다고 말해줬어."
잭에게는 이것이야말로 결정타였습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뿐 아니라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잭이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입증해 주었던 것이죠.
저에게는 마법의 주문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영국 총리에게 협박 서신을 보내면, 당연히 발신자 주변에 경찰을 보내 협박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판단하려 하겠죠! 저는 조심스럽게 이 가설을 잭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잭은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정부 당국이 자기를 얼마나 치밀하게 추적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휴식하기 위해 모리셔스섬으로 휴가를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여행은 순조로웠고 바에서 아름다운 여성도 만났다고 하더군요. 마침내 그는 자유를 얻고 행복을 만끽할 기회를 얻은 것이죠. 그런데 그 바에서 불길한 느낌이 드는 두 남성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모리셔스섬까지 나를 따라온 거야…. 내가 어딜 가든 끝까지 따라오겠지!" 그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이제 아름다운 여성이 자기를 체포하기 위한 미끼라고 의심했다고 합니다. 마지못해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는 계획했던 일정보다 일찍 영국으로 돌아왔고요.
"로버트, 나는 네가 가진 것(가족,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을 갖고 싶어." 그가 집 주방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허락하지 않겠지."
제가 답했습니다. "이봐, 잭. 물론 내가 아는 것은 지난 몇 시간 동안 네가 나에게 말한 내용뿐이야. 하지만 네 이야기를 놓고 보면, 그 모든 것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200% 확신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 그 망상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러자 몇 시간 전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처럼 그의 얼굴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빌어먹을!" 그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이미 그들이 너에게도 손을 썼구나."
사실상 여기서 우리 대화는 끝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저는 영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첩보기관 요원이 아닙니다. 모든 증거(무서울 정도로 잘생긴 외모, 위험할 정도로 번득이는 눈, 저보다 덩치가 두 배쯤 되는 사내 세 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릴 만한 능력)는 제가 비밀 요원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 글에서만큼은 오랜 친구를 맞이한 취리히에 사는 펀드 매니저라고 믿어 주세요.
그날 오후 이후 제가 스스로 했던 질문을 아래에 다루겠습니다. 잭과의 대화를 장황하게 쓰기는 했지만, 그의 상태를 분석하는 것은 이 글의 논지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하세요. 그날 오후에 겪었던 일은 정신 질환과 음모론, 정보를 판단하는 방법, 투자에 대한 시사점 같은 주제에 관한 생각을 분명히 정리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Q1. 인간의 뇌는 스스로 정신 질환을 촉진할까요?
그날 오후 일은 한 인간이 자기 정신 질환을 스스로 촉진할 가능성을 깨닫게 해서 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신체 내부의 질병(예컨대 알츠하이머병)이나 외부 충격에 의한 신체·정서적 트라우마(예컨대 후두부 타격이나 가족의 사망)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 결과로) 정신 질환이 '발병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잭과의 만남은 꽤 건강해 보이는 인간의 정신도 질병이나 외부 충격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파멸을 촉발할 가능성을 깨닫게 했습니다. 잭의 망상은 '엄청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을 화나게' 해서 해고당했다는, 악의 없는 합리화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적어도 일부는). 하지만 그는 깊은 토끼 굴로 빠졌고, (제가 알기로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Q2. 음모론이 개인에 미치는 피해는 간과될까요?
음모론이 사회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은 실로 엄청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이 폭력적인 국회의사당 행진을 촉발해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죠. 하지만 그날 오후 일은 음모론이 개인에 미치는 피해의 가능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미행까지 붙을 만큼 위험한 인물이 되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잭의 뇌는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관계를 맺고 직업을 유지하는 것처럼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과업조차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가족과 친구 모두 잭을 외면했고요.
Q3. 경제적 자유가 마냥 좋은 일일까요?
잭이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것은 하늘이 준 선물처럼 보입니다. 그의 주변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 몸을 뉠 곳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가 문제 일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네요. 그에게 돈마저 없었더라면 전 직장에서 당한 부당한 해고를 두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소매를 걷어붙이고 돈을 벌러 다녀야 했겠죠. 그가 경제적 자유를 누렸기에 인터넷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확증하는 정보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정보가 너무나도 많으니, 시간을 들인다면 누구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취리히에는 인터넷을 통해 프랑스의 오크 통 제조사와 뉴질랜드의 은퇴자 주거단지 운영사를 비교하는 어떤 남자도 살고 있습니다!
Q4. 모두가 음모론에 빠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까요?
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얼마나 쉽게 토끼 굴에 빠지는지도 충격적입니다. 이는 여러 단계로 진행되는데, 각 단계는 이전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잭은 1단계에서 자기가 해고당한 이유를 다른 사람의 복수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는 끔찍한 경험을 마주한 사람이 충분히 보일 수 있는 반응입니다. 직장을 잃고는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거나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2단계에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누구 책임인지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때 적어도 몇 가지 논거는 팩트였습니다. 그가 자기 비서를 화나게 한 것이나 비서의 남편이 공무원이었던 것은 팩트일 수도 있죠. 게다가 그가 정말 총리에게 협박 서신을 보냈다면 경찰이 분명히 그를 조사했을 것입니다.
3단계에서 잭은 이러한 팩트와 (인터넷에서 발견한) 데이터의 '점들을 연결해' 그가 해고당한 이유를 두고 광범위한 이론을 수립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기에 그럴 만한 자원이 있었죠. 그는 똑똑했고 시간도 많았기에 그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동기도 있었습니다. 그의 음모론은 일상적인 존재의 따분함보다 훨씬 매혹적입니다. 그가 바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밤을 보내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그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는 첩보기관이 심어둔 미끼였기 때문입니다! 총리가 그의 서신에 답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누구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잭의 일에 총리가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잭이 깨달았음을 총리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음모론에 빠져들 수 있는지, 정말 무섭습니다. 지루한 일상에서 무심코 클릭한 링크 하나가 마치 암세포의 첫 번째 분열처럼 우리 뇌를 자기 파멸의 소용돌이로 이끕니다.
Q5. 음모론의 문제가 보기보다 더 광범위할까요?
제 경험에서 잭은 망상이라는 기생충이 숙주를 말 그대로 집어삼킨 가장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스펙트럼의 반대편 끝에는 요즘 아주 인기 있는 음모론에 잠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범위를 넓혀 제 지인을 보면 스펙트럼상에서 다양한 곳에 몇몇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일부는 미국이 정말 달에 착륙했는지 등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제 관점입니다) 일에 무서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지만, 해당 주제를 벗어나면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보입니다. 국제 통화 시스템의 안정성처럼 삶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주제에 지나치게 큰 관심을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행히 이들은 잭처럼 스펙트럼의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잭과 묘한 유사점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이들은 보통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고 인터넷에 능숙하며 지능이 뛰어난 중년입니다. 자기 자신을 우유병을 꺼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세계적인 거대 음모를 파헤치는 탐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죠.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유이고, 대부분 피해를 끼치는 경우는 없습니다(적어도 그 개인 자신에게는요). 하지만 잭과의 만남을 통해 제가 깨달았듯 개인 차원에서의 위험은 보기보다 훨씬 큽니다. 한번 토끼 굴에 빠지면 탈출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점까지 계속 빠져 들기 마련입니다. 잭에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좋은 의도로 말했지만 그는 저를 영국 정부가 보낸 첩자로 여겼을 뿐입니다. 그가 망상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은 굴로 빠져 버렸습니다.
투자에 대한 시사점
What are the Implications for Investing?
이 글은 투자에 관한 글이 아니라, 음모론이 개인이나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음모론에 빠질 가능성이 평균보다 큰 독자에게 알리는 경고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투자에 적용할 만한 시사점도 있습니다.
잭의 이야기에서 핵심은 정보를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그는 가설('엄청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을 화나게 해서 해고당했다')을 수립하고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증거를 확보하러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투자자도 정보를 처리해야 합니다. 투자자는 훌륭한 투자가 무엇인지를 두고 가설이나 정신 모형을 수립합니다. 그런 다음 세상으로 나가서 가능한 한 다양한 출처에서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그 정신 모형에 부합하는 투자 기회를 규명하려 합니다.
투자자로서 저는 훌륭한 투자가 올바른 모범을 보이는 경영진, 계속해서 확장되는 경쟁우위, 매력적인 주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업 보고서를 읽거나 탐방하고, 경영진을 인터뷰하며, 경쟁사나 전前 직원을 인터뷰해 의견을 구하는 등 대상 기업이 제 정신 모형에 부합하는지 검증하죠. 다른 요인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다른 정보 출처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투자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투자자가 마주하는 도전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잭의 이야기는 정보를 잘못 처리하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투자에서는 훌륭한 투자가 무엇인지를 두고 잘못된 가설을 수립하거나, (올바른 정신 모형을 수립했지만) 추구하는 속성을 잘못 규명하는 식으로 발현되겠죠. 잭의 이야기에서 배울 만한 투자에 대한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① 겸손함이야말로 제1계명입니다
잘못된 이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는 바로 겸손함입니다. 자기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믿음과 오판의 가능성에 개방적인 태도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잭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대다수 사람은 두 태도 간 최적 균형점(만약 존재한다면)에 가까이 가기를 꺼린다는 것입니다. 내 아이디어가 옳은 것으로 판명 났을 때 얻을 추가 이익과 비교해 내 아이디어가 틀렸을 때의 손실이 너무 큽니다. 잭이 자기 음모론을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가까운 친구가 (마치 바이러스의 항체처럼 작용할) 반론을 제기할 여지를 남겼을지도 모릅니다.
② 인센티브는 중요합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여기서 '인센티브'는 운용 보수나 성과 보수 같은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금전적인 인센티브는 좋은 이론을 수립하기 더 어렵게 한다고 믿습니다. 이는 우리 마음속 깊은 동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부자가 되는 동기일까요? 신화로 남을 만한 텐 배거의 주인공을 찾는 것일까요? 그런 가치에 동기를 둔 사람은 이를 달성할 특성을 갖춘 투자를 발견하기 위해 '점들을 연결'하려는 유인이 있습니다. 바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성이 '미끼'라서 데이트할 수 없는 남자의 이야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투자 분야에 들어온 초기에 깨달은 사실 하나는, 다음 주도주가 될 종목을 사고 싶은데 1년에 단 몇 번만 투자 결정을 한다면 거의 매일 실망한 채로 퇴근하리라는 점입니다. 대신 매일 기업을 조금 더 이해하는 것으로 목표를 재정의한다면 성취를 맛보기가 더 쉬울 테고요. 제가 경영진과 만나서 회의하는 방식에 이러한 생각이 녹아 있습니다. 저는 경영진 미팅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기업과 사업을 완전히 이해하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미팅이 끝나자마자 텐 배거가 될 만한 기업인지 즉시 판단하지 않습니다. 이따금 계속 공부할 만한 매력을 느끼는 기업도 등장하지만, 실제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기업 수는 더 적습니다.
저와 다른 투자자의 동기가 같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자기가 이루려는 목표와 일치하는지는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잭의 사례에서는 그가 해고당한 원인을 이해하려는 동기가 어느 지점에서부터 행복이라는 목표와 어긋나 버렸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형편없는 투자 결정의 결과는 보통 비극적이지는 않지만(마피아 보스의 돈을 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요), 피하기는 해야겠죠!
③ 서로 대립하는 가설과 부정적 증거의 중요성
아주 오래전 전직 CIA 요원인 리처즈 휴어Richards Heuer가 쓴 《CIA 심리학(원제: The Psychology of Intelligence Analysis)》을 읽었습니다. 요원이 정보를 처리할 때 인간의 타고난 편향natural bias을 극복하게 하는 CIA의 훈련 방식을 논한 책이죠.
휴어는 가장 가능성이 큰 것뿐 아니라 가장 터무니없고 별난 것까지 가능성 있는 모든 가설을 목록화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썼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가능성이 큰 것뿐 아니라) 가능성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열린 태도를 견지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잭의 사례에서 봤듯 다른 가능성을 모두 배제하고 하나의 가설만 상정하면 이를 비판적으로 판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투자에 이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대립하는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분석 대상 기업에 해자가 없거나 악화하는 중이라는 반론이 되겠죠.
휴어는 또한 긍정적 증거뿐 아니라 부정적 증거를 찾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썼습니다. 가설을 수립하고 나면 이를 입증할 증거를 찾으려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어마어마한 정보량을 고려한다면 긍정적 증거를 찾기가 그리 어려운 과제일 가능성은 작습니다. 그래서 부정적 증거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잭의 문제 하나는 자기가 '위험한' 인물이 되었다고 결론 내린 후 이를 입증할 증거만 찾아 헤맸다는 것입니다(물론 성공했죠). 제가 투자에서 잭의 문제를 피하는 방법은,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좀 더 비판적인 투자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저는 애널리스트를 고용하는 것보다 이를 선호하는데, 직원에게서 '상사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독립 펀드 매니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말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④ 기록하세요
기록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뇌는 동의하지 않는 가설과 기존 믿음에 어긋나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립하는 가설과 모든 팩트를 실제로 적는 것입니다. 나아가 리서치 과정에서 발견하면 가설을 무효화하는 정보 유형을 적어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발견한 팩트에 맞춰 이론을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설을 폐기할 수 있으니까요.
잭은 아마도 저를 그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편견 없는 친구로 생각한 듯합니다. 그가 저를 만나려는 동기를 미리 적어뒀다면 유익했겠지만, 그는 제 조언을 받아들이는 대신 가설을 다음과 같이 변형했습니다.
"빌어먹을! 이미 그들이 너에게도 손을 썼구나."
제게는 투자자 서한이야말로 기록에서 이득을 본 가장 좋은 사례입니다. 저는 투자자 서한 덕분에 휴어가 논한 정보 처리의 함정 몇 가지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투자자 서한은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다시 쓸 수 없는, 특정 기업에 투자한 이유를 다룬 지울 수 없는 기록입니다. 또한 부정적 증거가 발견되었을 때 이를 지적하려는 활기찬 커뮤니티(즉 이 글을 읽는 투자자 여러분)도 있습니다. 우리 펀드가 투자한 기업에서 일이 잘못 돌아갈 때 제가 이를 모르고 지나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몇 년 전 노보 노디스크에 차질이 발생했을 때는 심지어 한 블로거가 제가 잘못 판단한 모든 일을 다룬 수 페이지의 글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밤 그 블로거는 제가 비밀 요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지도 모르겠습니다!
⑤ 공매도자를 주의하세요!
저는 롱 포지션(주가 상승에 베팅)보다 숏 포지션(주가 하락에 베팅)에서 음모론이 더 널리 퍼져있다고 확신합니다. 공매도자가 기업을 최악의 관점에서 다루는 왜곡된 시각은 언제나 충격적입니다. 공평하게 보자면 공매도자 역시 롱온리 투자자를 두고 마찬가지 견해를 피력할 것 같기는 합니다.
저는 이 현상이 현실 세계에서 편집증paranoia과 낙관적 믿음pronoia(편집증과 정반대의 의미가 있는 신조어)에 대응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편집증이 낙관적 믿음보다 더 널리 퍼져있는데, 아마도 사바나에서 생존하는 더 나은 전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사실 아주 낙천적인 사람인데, 이 글은 상당히 디스토피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낙관적 믿음으로 주제를 급선회하겠습니다(제 글이니, 제 마음입니다!).
'비밀 산타'
스위스 학교에는 '비히텔른Wichteln'이라 불리는 크리스마스 전통이 있는데, 영어권 국가에서는 '비밀 산타Secret Santa'로 부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12월이 시작되면 모든 학생은 무작위로 반 친구를 배정받은 후 자기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고 그 친구의 책가방에 선물을 넣어둬야 합니다(마니또). 한 달 내내 제 아이들이 자기에게 '기쁨을 선사할'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내려 궁리한다는 아이디어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다음번 연례 투자자 총회에서 그와 비슷한 것을 시도해 볼까 싶기도 합니다. 총회에 참석한 모두가 각자 가장 좋아하는 책을 무작위로 선정된 사람에게 익명으로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요? 모두가 섞여 앉아 '비밀 후원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려 대화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만 해도 흐뭇한 광경일 듯합니다!
투자와 음모론의 차이점
Where the Analogy of Investing and Conspiracy Theories Breaks Down
저는 투자와 음모론의 비유를 지금까지 논한 것과 같은 문제를 저지르면서까지 지나치게 확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둘 간의 차이점 하나는 훌륭한 투자 기회를 발굴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음모론을 알아차리는 것은 보통 그렇지 않죠. 적어도 열린 태도의 외부자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음모론의 특징은 갈수록 상상력을 발휘해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팩트를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투자자는 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인지 부조화 이론이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합니다.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아이디어를 동시에 떠올리기 힘들어합니다. 예컨대 이성적이라고 여기는 견해와 그 정반대가 팩트임을 시사하는 증거가 갈수록 늘어가는 상황에서 말이죠. 음모론을 폐기하거나 오히려 그에 몰두하는 것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합니다. 후자를 택하는 이들은 음모론의 중심에서 갈수록 과격해지는 핵심 역할을 담당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지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점거 사건을 지칭).
결론
Summing It All Up
투자와 음모론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더 많이 쓸 수도 있지만,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행동재무학은 인간의 다양한 편견과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에 무단침입하는 것은 여기까지 할게요.
이 글에서 제 전문 분야를 벗어나 의학 분야를 논하면서 실수한 것이 있더라도 여러분이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제가 그 주제를 다룰 적격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글은 세상을 더 잘 이해할 목적으로 활용한, 제가 겪은 일화에 바탕을 둡니다. 이와 동시에 무언가가 일화라는 사실을 명시한다고 해서 이를 활용해 작성한 내용에 관한 저자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이 글의 독자가 자기 정신 건강에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음모론에 빠지는 일이 줄었으면 합니다. 지난주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사회에 미친 피해는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을 점거한 사건이 현실 세계에 미칠 영향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기 정신 건강에 미치는 피해는 잘 다뤄지지 않는 주제입니다. 독자가 이 글을 읽고 나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투자자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요.
로버트 비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