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좇는 투자 #2

변화를 좇는 투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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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맨델
Invest like the Best
론파인캐피털
카테고리
투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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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년 0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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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좇는 투자 #2

 
<Invest like the Best> 중 <Investing Behind Change>
진행: 패트릭 오쇼너시, 게스트: 스티브 맨델
 
번역: generalfox(파란색 글씨: 역자 주)

변화를 좇는 투자

 
패트릭: 제가 정말 감명받은, 변화를 좇는 투자라는 핵심 아이디어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결국 진정한 변화란 어떤 모습인지,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새로운 거대 트렌드나 변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존재하죠. 트렌드와 변화의 원천을 판단하고 관련 기업을 발굴하기 전에 별도 개념으로 정립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스티브: 사실은 말씀하신 것과 정반대의 과정을 거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즉 기업에서 출발해 이들이 하나의 트렌드에 속한다는 점을 파악하는 것이죠. 당신 말처럼 영원히 지속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특히 오래 존재하는 것이 있긴 합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우리가 가장 방점을 뒀던 트렌드는 무선(wireless)이었습니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이었고 휴대용 전화기라고 해도 어디에서나 통신이 가능하진 않았죠. 그런 과거 모습에서 발전한 걸 보면 무선은 놀라운 성장 산업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는 여러 거대 통신 기업은 무선 분야에 진출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투자한 일부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을 택하리라 추측했죠.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범용재 산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에 한 15년 동안은 무선 분야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오래가는 트렌드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 투자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오랫동안 중요한 위치를 점한 결제(Payments)가 좋은 사례입니다. 현금과 수표에서 전자 결제로의 전환은 사반세기(a quarter a century) 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혁신이 일어나고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고 있죠. 정말 오랫동안 존재한 트렌드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정말 역동적인 변화의 장입니다. 시장이 그리 크지 않거나 미미한 점진적 혁신만 일어날 때가 바로 거리를 둬야 할 상황입니다.
패트릭: 공매도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주제를 조금 더 다뤄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공매도의 상흔(the scars of shorting)이라고 이름 붙인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스티브: 상처는 지금도 있습니다. 언제나 방금 얻은 듯한 상처죠.
 
패트릭: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례는 당신이 1990년대에 관해 이야기해 줬던 내용인데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론 파인 설립 초기 북스 어 밀리언(Books-A-Million, 1917년 설립된 미국의 서점 체인으로 BAM!으로도 알려져 있다)이 가장 두드러지는 예시 같습니다. 공매도 시장이 투자자에게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한두 개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스티브: 네, 공매도는 정말 잔인할 수 있습니다. 론 파인은 1998년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격동적인 한 해였죠. 여기에는 러시아 부채 위기가, 저기에는 신흥 시장을 탈출하는 행렬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1998년 8월쯤에 홍콩 통화국(Hong Kong authorities)이 설립되고 나서 항셍지수가 10% 이상 상승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이 취임한 후 대규모 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1998년 가을에 투기적 세력이 미쳐 날뛰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 부채 위기를 꽤 괜찮게 이겨냈습니다. 그 후에 생존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고 생각했던 여러 인터넷, 통신 분야 기업을 공매도했죠. 특히 언급하고 싶은 기업은 온세일(Onsale)이라는 곳인데요. 고 컴퓨터(Go computers)를 창업한 사람(컴퓨터 과학자인 제리 카플란을 지칭)이 세운 회사였습니다. 전자펜에 기반한 컴퓨터 같은 걸 만들었는데, 작년에 HP와 컴팩(Compaq)이 만든 컴퓨터와 주변 장치를 사들여서 캘리포니아에 있는 창고를 기반으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년이 지난 구식 제품을 말이죠.
 
무엇보다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회사였습니다. 재무상태표에 현금 1억 달러를 쌓아두고 있었는데, 매 분기 2천만 달러 현금이 나가고 있었죠. 그래서 상장 주관사가 제대로 된 공모가 산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온세일은 두세 분기 동안 상장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1998년 3분기 실적을 10월 중순에 발표했는데, 여전히 현금을 소진하고 있었고 이 기업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어떤 신호도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주가는 12달러였고 우리 공매도 가격은 주가의 50 베이시스 포인트였습니다. 그런데 6주 후에 아무 뉴스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108달러까지 치솟았어요. 6주 만에 9배가 된 것이죠. 우리가 공매도에 물렸다는 걸 알았지만, 포지션을 조금 줄였을 뿐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1년쯤 뒤에 온세일은 파산해서 돈을 좀 벌었지만, 다 합쳐서 계산해 보면 손실을 봤을 겁니다.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리죠. 제가 연중에 가장 공포를 느끼는 때가 바로 추수감사절 다음 날입니다. 왜냐하면 연휴 동안 집에 있으면서 가족 친지와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화를 나눈 개인투자자들이 책상에 앉아 주식 거래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죠. 추수감사절 다음 날 주식 시장은 반나절만 열렸습니다. 1998년 추수감사절 다음 날 바로 이 북스 어 밀리언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다행히 그날 이 회사에 공매도하지는 않았습니다. 북스 어 밀리언은 미국 남동부의 번화가 지역에서 수백 군데의 서점을 운영하는 회사죠. 직전 종가는 5달러였습니다. 개장 전에 회사는 책을 판매하는 웹사이트를 개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웹사이트를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만들 거라는 이야기였어요.
 
패트릭: 당시에 아마존은 진짜 온라인으로 책을 팔고 있었죠.
 
스티브: 네, 하지만 규모가 작았고 책과 DVD만 판매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찌 됐든 1억 달러 정도의 시가총액을 가진 북스어밀리언 주식이 그날 39달러로 마감했습니다.
 
패트릭: 오전에 5달러로 시작했는데 말이죠.
 
스티브: 맞습니다. 최근 AMC나 게임스톱 같은 일은 과거에도 일어났습니다.
 

론 파인 설립과 성장

 
패트릭: 오늘 대담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인 변화의 영역(zones of change)으로 넘어가기 전에, 당신이 론 파인을 설립하고 구조를 갖춰온 생각을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훌륭한 투자이익을 달성하는 당연한 부분과 이를 가능케 하는 사람이라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셨을 듯합니다. 하지만 승계와 문화, 훌륭한 기업이 복리 성장하도록 내버려 두는 투자와 마찬가지로 론 파인 자체가 어떻게 오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을 텐데요. 초창기에 단순히 알파 수익률을 얻는 것 외에 이런 주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말씀해 주시죠.
 
스티브: 저는 론 파인을 시작하기 전에 세 군데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 회사에서 일할 때 저는 엄청 많은 것을 배웠고 정말 훌륭한 멘토가 있었습니다. 사업과 투자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기업을 운영할 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도 배웠어요. 제가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한 10년 일찍 창업했다면, 100% 망했을 겁니다. 저는 마스 앤 컴퍼니(Mars & Company)라는 컨설팅 펌에서 일하며 디디에 팽(Didier Pain, 프랑스어로 빵이라는 뜻이죠)이라는 멘토 아래서 사업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그 후에 골드만 삭스에서 리테일 애널리스트로 일했는데, 상사였던 조 엘리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타이거에서 줄리언 로버트슨(Julian Robertson, 헤지펀드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쓴 타이거 매니지먼트의 창업자) 밑에서 일하며 또 많이 배웠습니다. 세 회사에서 서로 다른 것을 배웠죠.
 
패트릭: 세 군데서 배운 것을 하나씩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스티브: 디디에는 사업의 본질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 세부적인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하던 일이 그것이었죠. 조는 흥미로운 발표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렇고 리테일과 경영진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줬습니다. 줄리안에게서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먼저 헤지펀드의 운영 방식과 재무제표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엄격함이 있죠. 진실성과 똑똑함, 살아온 배경 등 모든 부분에서 말이죠.
 
어쨌거나 제가 언급한 것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기업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소유(ownership)나 사업 구조 면에서도 그러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머리에 새겼고 별로인 것은 무시하려고 했습니다. 론 파인을 시작할 때 오랫동안 존재하는 회사가 되어서 저보다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론 파인은 금융 서비스나 헤지펀드 산업에서 전형적인 소유 구조, 즉 지주와 농노 같은 관계와 다르게 아주 광범위하게 설계했습니다. 투자업에 종사하지 않지만 우리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은 주주도 있습니다. 가능한 한 공정하고 투명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회사의 간접비를 충당할 만큼이긴 하지만 시장 평균에 비해서는 낮은 보수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보수 구조를 만들었지만, 우리가 자본의 긴 듀레이션을 확보할 수 있다면 더 낮은 보수가 부과됩니다. 참고로 론 파인에는 의무보유기간(lockups)이 없습니다. 반면에 자금을 일찍 회수한다면 그에 다른 페널티, 즉 더 높은 보수가 부과됩니다. 아주 다각화된 유한책임사원 구조를 원했고 그 방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사업 자체에서는 아주 다양한 작은 일을 잘 해내려고 합니다. 일부는 그리 작은 일은 아닌데,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고 매일 일하러 나오길 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후한 401(K)(봉급에서 공제하는 퇴직금 적립제도 또는 적립금으로, IRS 코드 401(k)에 의거해 정년까지 인출하지 않고 놔두면 그간의 세금이 면제된다) 제도, 조식 및 중식 제공, 모든 직원이 이사회에 참가하는 론 파인 재단 설립 같은 일이죠. 그리고 론 파인의 모든 사무실은 크기가 다 동일합니다. 직급에 따른 단계적 차이 같은 건 없어요. 내부에 유리문으로 된 사무실이 있고 그 밖에 보조 직원의 책상이 있는데, 제가 타이거에서 일할 때도 이런 구조였죠. 사무실 크기로 의견의 경중이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관점의 폭을 넓혀 줍니다. 또 상대적으로 하급 직원들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해주죠. 밖에 보이는 거라곤 I-95 고속도로(Interstate 95, 미국 남동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와 북동부 메인주, 캐나다 뉴브런즈윅주를 잇는 총 3,089.52km의 고속도로)밖에 없으니 세계 최고의 경관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훌륭한 사무실 건물인 건 분명합니다. 사무실에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말 그대로 사업 첫날(day one)이었던 7월 1일에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우리가 운용자금을 받기 전인 1997년 7월 1일이었죠. 셀리아 캐닝(Celia Canning, 론 파인 캐피털의 영업 총괄)과 함께 길이 2.4미터, 너비 3.7미터의 창문 없는 방에서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타이핑해 준 걸 들고 2~3주간 전국을 누비는 로드쇼 일정이었습니다. 원래 알던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으며 콜드 콜(cold call, 사전에 접촉하지 않은 잠재 고객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유도하는 전화)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이 사업계획서에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대의 대답을 반영해서 사업계획서를 수정하고 변화를 줬죠.
 
패트릭: 그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셨군요.
 
스티브: 네, 맞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오늘날 단체 이메일(mass email)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동을 했습니다. 단지 당시에는 단체 우편(mass mailing)이었을 뿐이죠. 200명에서 3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우편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 중에는 변호사나 회계사, 은행가 같은 부류도 있었지만 유한책임사원 후보와 직원 후보자도 있었습니다. 그 사업계획서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사업 철학과 보수 및 수수료 체계, 투자 방법에 대한 내용까지도 말이죠. 그 몇 달간 이 방식을 반복함으로써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패트릭: 회사의 일상적인 모든 업무를 당신이 맡지 않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셨을 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생각과 과정에 대해서 알려주시죠.
 
스티브: 음, 사실은 처음에 계획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디어였을 뿐이죠. 폭넓은 소유 구조와 상대적으로 간소한 팀 구성 같은 것을 지지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사업 첫날에 저는 몰랐습니다. 회사에 출근한 애널리스트 아무와도 일해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처음에는 저를 포함해 6명이 근무했습니다. 저는 나머지 5명과 이전에 같이 일한 적이 없었습니다. 일종의 복불복(crapshoot) 같았습니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그들을 알게 됐고 그들도 저를 알게 됐습니다. 물론 직원 구성은 때때로 변했죠. 하지만 제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내려놓았습니다. 론 파인은 자본 배분에 일정 금액의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헬스케어 담당인 사라 고든(Sarah Gordon)은 2억 달러를 운용했습니다. 텔레콤 담당인 말라(Mala), 또 마르코(Marco)와 데이브 크레이버(Dave Craver)가 있었죠. 우리는 회사 재무상태표 상의 제약만 지키면서 자금을 운용했습니다. 총노출도(gross exposure)와 순노출도(net exposure) 기준으로 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에 관한 지침이 있긴 했지만, 롱이든 숏이든 그들이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20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변화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게 바로 우리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였고 우리가 발전해 온 방식입니다. 최근 3년간은 아까 언급한 인물 중 말라와 데이브 크레이버, 켈리 그라나트(Kelly Granat)가 투자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가 아니라요. 저는 그저 제 의견을 말할 뿐입니다. 그들이 들을 때도 있고 무시할 때도 있지만, 결국 의사결정자는 그들입니다.
 
패트릭: 지난 시간 동안 좋은 애널리스트의 자질이 무엇인지에 관해 어떤 걸 배우셨나요?
 
스티브: 많은 것이 있겠지만,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선형적(linear)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애널리스트로 성공하기 힘들 겁니다. 우리는 언제나 확률이라는 회색 영역에서 일합니다. 수학 문제의 답을 얻는 것과 같은 방식을 기대하는 사람은 우리 세계에서 실망만 얻을 거예요. 정답이 없기 때문이죠. 선형적 사고자도 엄청나게 똑똑하고 노벨상 같은 걸 탈 수도 있겠지만, 성과에 관한 가중치 부여와 확률이 전부인 투자 세계에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이 불편하다면 투자 세계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패트릭: 오늘날 당신이 애널리스트라고 한다면, 사업의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는 교훈은 어떻게 변화했습니까?
 
스티브: 큰 변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20년도 더 전의 과거와 비교하면 사업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원은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알아가는 방향이라야 합니다. 웹 스크래핑이나 글래스도어(Glassdoor, 해당 회사 직원의 익명 리뷰에 기반한 직장 및 상사 평가 사이트) 등을 활용하는 건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도구이고 훨씬 더 많은 데이터에 접근 가능합니다.
 
패트릭: 그런 도구가 이제 아주 많죠.
 
스티브: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온갖 종류의 도구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업의 본질을 파악하는 기본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패트릭: 그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 가장 흥미를 느끼십니까? 당신이 고대하는 순간은 어떤 걸까요?
 
스티브: 그런 순간이 바로 제가 해온 일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고 계속 흥미를 느끼는 지점입니다. 지금은 그런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되는데, 오늘날 혁신이 더 많이 일어나고 기업 세계에서 전례 없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코스트코가 어떻게 북미 프리미엄 올리브 오일 시장을 석권하게 됐는지도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패트릭: 어떤 이야기죠?
 
스티브: 캐슈 사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올리브 오일 이야기와 논지는 동일합니다. 농장주를 방문한 코스트코는 더 많은 캐슈를 오직 자사를 위해 공급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농장주는 그럴 수 없다며 많은 이유를 대겠죠. 그러자 코스트코는 농장주의 중간 개입을 건너뛰고 재배자와 바로 거래하는 방식으로 전국 프리미엄 견과류 시장에서 가장 높은 시장 점유율을 달성했습니다. 올리브 오일도 똑같습니다. 이탈리아에 있는 재배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매입했습니다. "재배자님, 아주 훌륭한 올리브오일을 생산하고 계시네요. 우리가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요. 컨테이너 선적을 준비해둘게요." 재배자는 "컨테이너라고? 아주 좋군" 같은 반응을 보였죠. 이제 그 선적량은 많이 늘었습니다.
 
지금은 상장 기업이 됐지만 비상장 기업이던 시절에 FIGS(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에 본사를 둔 미국 의료 의류 브랜드)라는 회사에 투자한 적이 있습니다. 이 회사를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패트릭: 물론 알죠. 수술복 만드는 곳 아닙니까?
 
스티브: 네, 맞습니다. 이 회사를 알고 나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리테일에서 그 모든 작은 틈새시장이 이미 다 알려져 있고 자세히 조사해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기 꽤 규모가 큰데도 엉망진창이었던 산업이 있는 겁니다. 형편없는 제품이 시장에 전달되는 방식도 구식이었죠. FIGS를 창업한 두 여성은 이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알아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친구인데, 한 명이 더 좋은 수술복을 직접 만들어주겠다고 했던 것이죠. 또한 FIGS는 웹을 잘 활용했는데, 이렇게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모델(direct to consumer model)은 제품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FIGS는 헬스케어 분야 종사자가 일을 더 잘하고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에 관한 커뮤니티를 훌륭하게 구축한 사례입니다. 물론 팬데믹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상황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커뮤니티가 없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잘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헬스케어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지는 않지만, 면역 요법이나 연속 혈당 측정기 등이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걸 한번 보시죠. 정말 아주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우리는 중국에 있는 작은 병원 체인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 일과 병원 산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성과를 개선해 가는 걸 목격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이 일에서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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