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Law》의 저자인 세바스티안 말라비(Sebastian Mallaby)가 2022년 1월 24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2년 1월 초 투자자 대상 사기 공모와 3건의 금융 사기 등 기소 죄목 4건에 관해 배심원단은 엘리자베스 홈스의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한때 실리콘 밸리의 총아로 주목받았던 그녀의 회사 테라노스는 핵심 혈액 진단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혹에 휩싸였죠. 홈스와 테라노스의 실패를 두고 '벤처캐피털의 실패이기도 하다'라는 비판이 많은데, 최근 저서에서 벤처캐피털의 역사와 의의를 다뤘던 말라비가 답합니다. 더 관심 있는 분들은 테라노스의 사기극을 취재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쓴 《배드 블러드》나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드롭아웃〉을 보셔도 좋겠습니다.
벤처캐피털리즘: 엘리자베스 홈스와 테라노스
세바스티안 말라비
번역: generalfox(파란색 글씨: 역자 주)
사기극을 벌인 혈액 진단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가 몇 주 전 유죄를 평결받았다. 이를 벤처캐피털의 불명예를 의미하는 더 큰 사건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잘 속아 넘어가는 투자자들은 거의 10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테라노스에 투자했는데, 회사는 결국 B급 영화의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실체가 드러났다. 벤처캐피털의 성차별(벤처캐피털 파트너 중 여성 비율은 충격적인 16%대 초반에 불과하다)과 인종주의(벤처캐피털 파트너 중 흑인 비율은 3%에 불과하다), 엘리트주의(MBA 학위를 갖춘 벤처캐피털리스트 중 3분의 1은 스탠퍼드나 하버드를 졸업했다)같이 이미 잘 알려진 공격에 더해 그 무능력함을 똑똑히 알린 이번 사건은 마치 그들이 마주한 KO 펀치 같기도 하다.
벤처캐피털의 폐단으로 보이는 이번 사건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의 핵심을 뒤흔들 만하다. 약 20년 전에는 초기 기술 투자가 틈새 사업이었는데, 기술 자체가 틈새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벤처캐피털은 다음 세 가지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먼저 실리콘 밸리를 벗어나 미국 다른 도시나 아시아, 유럽으로 확장하고 있다. 나아가 다른 산업을 개척하거나, 수십억 달러 가치의 "유니콘" 기업이 주식 시장 상장보다는 벤처캐피털 곁에 머무는 걸 택하면서 스타트업 단계 투자를 벗어나고 있다.
벤처캐피털 업계에 다양성이 부족한 것은 정말 문제이지만, 그 무능력함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사실이 아니다. 벤처캐피털은 무능력함 덕분에 번성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산업을 마치 (집권 당시 목표 달성을 위해 온갖 규정과 규범을 어기고 거짓말을 일삼았던)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을 보듯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와 정반대로, 벤처캐피털의 능력은 혁신과 성장을 부르는 필수적인 동인이다. 전체 미국 기업 중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는 곳은 겨우 1%에 불과하지만, 이 극소수가 주식 시장에 상장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성과를 내는 비금융 기업의 47%를 차지한다. 또한 상장에 성공한 기업의 총연구개발비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89%에 이른다.
테라노스의 대실패를 벤처캐피털의 실패로 해석할 수 없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테라노스는 벤처캐피털이 아니라 비(非)기술 분야 기업에서 대부분의 자금을 조달했다. (월마트를 통해 부를 축적한) 월튼 가문이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1억 2,1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또한 디보스 가문(암웨이)과 콕스 가문(라디오와 TV 방송국)이 각 1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들 벤처 '관광객' 중 테라노스의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증거를 확인하려 한 곳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홈스는 '진짜' 벤처 투자조합인 메드벤처(MedVenture)에 피치(pitch)했을 때 몇 가지 질문에 답하지 못했고, 그녀가 갑작스럽게 자리를 떠나면서 미팅이 끝났다.
다음으로 테라노스에 투자한 몇몇 유명 기술 투자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벤처캐피털 전체가 무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벤처캐피털은 다른 금융기관과 다른 방식으로 리스크에 접근한다. 벤처캐피털은 자기가 투자한 기업 절대다수가 실패하리라고 예상한다. 주식 시장 투자자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재앙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소수의 투자 기업이 자기 투자금을 열 배 이상 불려서, 헤지펀드가 단일 포지션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대박(bonanza)'을 이룰 수 있길 희망한다. 따라서 초창기 테라노스에 모험적인 시도를 해서 100만 달러를 날리는 것은 벤처캐피털의 일반적인 사업 행태일 뿐이다. 이어지는 홈스의 사기 행각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실존하지 않을 것 같은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 실험적인 자본을 조달한 것은 그렇지 않다.
그렇긴 하지만, 벤처캐피털의 무능력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른 투자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실패보다 더 많은 성공을 거두면서 자기 능력을 입증한다. 벤처캐피털리스트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실패로 판명 나는 투자를 워낙 빈번하게 하는 탓에 벤처캐피털의 '대박'은 이론적으로 룰렛에서 당첨 번호를 맞추는 것처럼 무작위에 의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나아가 최고의 기업가들은 오랫동안 좋은 실적을 낸 벤처캐피털리스트 주변에 모여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좋은 실적을 지속했다고 해서 좋은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는 없다. 성공적인 벤처캐피털은 이 "후광 효과" 덕분에 실제 실적과 관계없이 계속 번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 가설이 얼마나 그럴듯하게 들리든 관계없이, 나는 지난 4년간 벤처캐피털을 연구한 끝에 그 신빙성을 의심하게 됐다. 학계는 그 후광 효과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벤처캐피털의 역사를 보면 한때 실리콘 밸리를 주름잡았으나 결국 설 자리를 잃은 수많은 투자조합으로 가득하다. 2001년 그 유명한 클라이너 퍼킨스에 속했던 최고의 벤처캐피털리스트 두 명은 포브스 미다스 리스트에서 각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20년이 지난 현재 클라이너의 파트너 중 리스트에 포함된 사람은 단 한 명이었고, 그의 순위는 77위였다.
후광 효과가 실적의 지속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실적을 지속하는 벤처캐피털은 능력을 갖춘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능력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벤처 투자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매력적이지만 집중력을 흩트리는 이야기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언젠가 지급 결제 서비스 기업인 스트라이프(Stripe)의 공동창업자 패트릭 콜리슨에게 최고의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세쿼이어(Sequoia)의 마이클 모리츠로부터 어떻게 투자를 유치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콜리슨은 유려한 청회색에 빨간색 줄무늬가 있는 서벨로(Cervelo) 팻바이크를 타고 모리츠의 사무실로 갔다고 대답했다. 모리츠는 자전거를 보자마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콜리슨이 매일 자전거를 타는지, 사이클리스트인지, 올드 라 혼다(Old La Honda)에서 가장 좋았던 코스는 어디인지 질문 공세를 퍼부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콜리슨은 투지 넘치는 스포츠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게 벤처캐피털이 기업가로서 자기 전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던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실리콘 밸리를 돌아다녀 보면 이와 비슷한 수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조사해보면 벤처캐피털의 진정한 역학과 마주하게 된다. 세쿼이어의 스트라이프 투자에서 핵심은 콜리슨이 불과 21살일 때 향후 훌륭한 전망이 기대된다고 알아본 조기 포착 시스템에 있다. 세쿼이어는 젊은 기술 분야 전문가에게 자금을 나눠주고 유망한 기술 기업가 무리에 "엔젤" 투자를 하게 함으로써 레이더망에 새로운 후보를 편입했다. 콜린스는 모리츠와 만나기 1년 전에 세쿼이어와 관련 있는 엔젤 투자자 두 명에게서 3만 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이 사실이 콜린스의 멋진 자전거보다 스트라이프-세쿼이어 협력에 핵심 역할을 했다.
다른 세련된 벤처캐피털을 살펴보면 이들의 정교한 방법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액셀 파트너스(Accel Partners)는 "준비된 사람(prepared mind)"이라고 알려진 접근법을 개발했다. 다가오는 기술 전환, 가령 고객이 사용하는 기기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것을 공부한다. 거기서 시사점, 즉 새로운 하드웨어 구성과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 보안 취약점 등을 도출한다. 그러면 이 새로운 물결을 잘 타서 높은 수익성을 담보할 스타트업을 만났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는 준비된 사람이 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인간 정신은 이와 정반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구조를 타고났다. 손실을 피하고자 도박을 하지만, 상방 가능성에는 비이성적일 만큼 주저한다. 하지만 클라이너 퍼킨스의 리더들이 서로 주고받았던 말처럼, "실패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실패해봤자 딱 투자 원금만큼만 잃을 뿐이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킹메이커였고 현재는 자기 벤처캐피털 회사를 운영하는 비노드 코슬라가 임파서블 푸즈(Impossible Foods)에 투자한 의사결정에 관해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육류가 들어있지 않은 버거를 만드는 회사인데, 그 야망은 테라노스와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때가 있었다. 임파서블의 창업자인 패트릭 브라운은 육류 산업 집합체를 없애려는 목표를 담은 사업계획을 코슬라에게 제시했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세상을 다 바꾸려는 비전이었다. 코슬라는 "만약 그[브라운]가 실패한다면, 엄청난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코슬라는 그런 우려는 제쳐두고 임파서블에 투자했다. 브라운이 성공할 가능성이 10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더라도, 한번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1년이 지난 현재 육류 산업은 아직 뒤집히지 않았지만, 임파서블의 기업가치는 70억 달러에 이른다. 코슬라가 했던 질문처럼, 시도해서 실패하는 것과 시도 자체에 실패하는 것 중 무엇이 나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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